시를 쓰는 단 하나의 이유는 산문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
- 필립 퍼키스 –
사진 교육자이자 비평가인 필립 퍼키스의 이 말을 사진으로 전환해 보면 다른 매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어서 사진을 찍는다. - 정도로 바꾸고 싶다.
우리는 왜 사진 찍는 일에 열광 하는가?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들 중에 예쁜 선들을 그려 놓고 그 선들 속을 색으로 채워 넣는 그림책이 있다. 이 그림책은 아이와 직장인 할 거 없이 인기가 있다고 한다. 미술에서 선은 지성이고 색은 감정, 감성이라고 한다.
삶의 대부분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려고 신경 쓰며 사는 우리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공간 속에 그 색을 칠하고 나면 어떤 후련한 가벼움이 생기는 건 아닐까?
카메라가 제공하는 공간 속에 셔터를 눌러 채워 넣은 내 감정의 비밀들은 그림책의 선들 속에 색을 채우는 것처럼 후련한 쾌감을 준다.
누군가는 음악을 연주하며 또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며, 또 누군가는 글을 쓰며 감정들을 표현 하듯이 사진을 하는 나로서는 카메라야 말로 내 안의 무언가를 표현하는 훌륭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카메라는 필수품이 되었고, 언제나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활용이 타인에게 어떻게 잘 보이려는 자랑의 도구가 되어 버린다면 대부분의 삶이 타인에게 어떻게 잘 보이려고 애쓰며 사는 우리의 현 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공허함이나 나의 속물적 근성을 도와주는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사진을 직업이 아닌 취미로 한다는 것은 아마 신화처럼 변해버린 거대한 코드 시스템의 현대 사회에서 탈출할 수 있는 도구가 되며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어느 멋진 촬영지에서 그림처럼 기가 막히게 찍은 사진보다 소소한 나의 일상이나 마음먹고 떠난 여행지에서 만나고 느꼈던 빛, 공간, 거리 사이의 관계, 공기, 울림, 리듬, 질감, 명암등... 그것이 무엇이든 비밀의 방에서 어떤 의미가 되어 돌아온다.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지만 나의 시선을 보여준다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말을 하거나 글로 적으면 단번에 진부해 질 수도 있고, 유치해 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사진의 프레임으로 보여 준다는 것은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다.
논리적 언어로는 설명할 길 없는 미묘하고 심오한 무언가에 대한 반응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실이 보여주는 진실보다 감정이 보여주는 진실을 기록하고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사진은 초점의 정확성이나 노출의 정확성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거대한 기능을 수행하는 현대인들 ...
그 기능을 훌륭히 수행하려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산다.
중요한 것, 필요한 것, 돈 되는 것.... 이것들을 빨리 구분하고 누구보다 빨리 앞서 획득하는 삶이 잘 사는 것이라고 믿고 살도록 현대 사회의 시스템이 최면을 걸어 놓았다. 그러기 위해 좋은 것들을 보여 주고, 자랑하며 살아간다. 그 속엔 획일적인 소통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 기능체로서의 삶은 언제나 내가 없으며, 진부한 속물적 소통의 일방통행만이 있다.
오늘 하루에도 나를 스쳐간 어떤 감성과 느낌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보잘 것 없고, 중요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으며, 돈이 되지도 않는 나에게 경험된 느낌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기능으로서의 존재가 아닌 나의 경험만을 위해 존재하는 길을 걷는 기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며, 각자의 반응으로 셔터를 누르고 시각 언어로서 자기의 감각들을 빛의 자국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1등은 없다.
완벽한 기능체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사진은 나에게 마음껏 실패하고, 실수할 권리와 공간을 제공한다.
인간은 언제나 정확한 답과 행동을 하며, 무한한 삶을 누릴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사실 인간은 어떤 것에 틀리기도 하고, 실수도 하며 항상 변하는 경계의 끝에 있는 모호하고, 유한한 존재이다.
사진은 현실에서 차용을 해 오지만 현실의 밖을 이야기 하는 역설이 있다. 프레임으로 된 새로운 세상의 표현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사진이라는 새로운 무엇으로 표현하는 예술적 도구이다. 빈센트 반 고호가 스위스의 멋진 풍광을 그려서 유명하겠는가? 언제나 마주한 일상의 거리, 빈 방, 거기에 놓여 진 화분... 이러한 것들을 자신만의 시선과 색감으로 어떤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처럼 사진가는 셔터로 자신만의 의미를 새긴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찍었다가 비밀의 방에서 꺼내어 보며 의미를 해석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그저 하늘을 바라보듯이 사진 속 세상을 바라본다. 그것이 어쩌면 행복이나 황홀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의 정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고정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존과 알래스카의 아름다움에 어떻게 등수를 매길 수 있단 말인가 ?
2013년 10월에 시작한 사진 그룹 포토보이스가 세 번째 전시를 한다. 2014년 첫 그룹전에 5명이 참가했고, 2017년 두 번째 그룹전에 9명이 참가 했으며, 이번 세 번째 그룹전에 19명이 참가한다. 사진소리로 자기의 느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사진이라는 프레임으로 내가 나를 바라보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일 것이다.
포토보이스 그룹전은 축제다. 사진으로 말하는 사람의 축제이기도 하고, 관람자들이 무엇으로, 어디서 찍었는지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표현된 어떤 세상을 감상하며 자기만의 상상 공간이 되는 작가와 관람자의 자유로운 축제다.
19명의 아마추어 사진가가 각자 자기의 시선으로 아름다움을 이야기는 공간의 열림이다.
- 내가 서 있는 장소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 -
- 프레데릭 좀머(Frederick Sommer)
2018. 11 - 글 / 현정범 -